소설게시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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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어요, 나간다고요."
어서 학교가라고 재촉하는 어머니에게 T는 그렇게 소리친다. 무엇이 그렇게 바쁜지 T는 연신
자판을 두들기고 있었다. 이미 시계는 8시 10분을 넘기고 있었고, 이이상 지체되면 지각을
면하지 못하리라. 하지만 T는 아직도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무엇을 하는것일까. 시계한번
쳐다보지 않고 T는 잠시후에 집을 나선다. 이미 지각이 확정되서일까 그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아니, 그렇다 치기엔 너무도 밝은 표정이다.
늦은 버스를 타면서도 T는 무언가 생각하고있다. 아마 지각에 대한것은 아니리라. 지각따윈
이미 그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이윽고 버스가 횡단보도 앞에 멈춘다.
"학생 안내려?"
버스기사가 소리친다. 상념에 빠져있던 T는 어떻게 저 버스기사가 내가 내릴곳을 아는것일까
생각했지만 자신이 입고있는것이 S중학교의 교복이란걸 생각해내는데는 오래걸리지 않았다.
재빨리 버스에서 내린그는 때마침 바뀌어있는 횡단보도를 뛰어서 건넌다. 교실에 도착한 그는
교무실로 불려갔다. 몇대 맞았는지 허벅지를 문지르며 오는 그에게 누군가 말을 건낸다.
"많이 맞았냐? 왜 지각했냐. 바보녀석."
말을건 사람은 B이다. T와 같이 S중학교에 재학중인 학생이다. T와는 절친한 사이로 어렸을
때부터 알고지냈다.
"몰라 임마, 젠장. 아파죽겠다."
퉁명스럽게 내뱉은 T는 교실로 향한다.
T와 B는 비슷한 사상을 지녔다.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서 그런것일까. 항상 불평하는건 아직
까지도 남학교를 유지학고 있는 S중학교이다. 바야흐로 21세기가 도래하고 남녀평등이 사회에
완전히 자리잡아버린 이 시대에 학교가 남녀공학이 아니란건 그 둘에겐 정말 치명적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이미 대부분 신설학교나 수도권 지역의 학교는 전부 남녀공학으로 바뀐지 오래였다.
"하아 뭔가 재미있는거 없나, 따분해 죽겠군 요즘 생활은."
B가 중얼거린다. 학교에 있을 때의 대부분의 시간은 그에게 있어선 따분한 시간들이다.
실제로 학교생활은 그들에게 있어서 별 의미가 없다. 그저 남들 하는것이니 하는것. 이라고 생
각하고 있는것이다. 그들이 기다리는건 언제나 방과후이다. 그들은 틀에 박힌듯 돌아가는 학교
생활보단 조금더 자신을 유익하게 만드는건 항상 학교가 파한뒤의 여가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악기를 연주하거나 컴퓨터를 하거나, 무언가를 만들거나. 아니면 교과목 이외의 것을 배우거나
그것들이 자신에게 조금더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그들에게 어른들은 말한다. 그렇게 공부
해서 좋은 고등학교엔 어떻게 갈것이며, 대학은 또 어떻게 갈것이냐고.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할줄 아는게 아무것도 없으면서 좋은 대학엘 들어가면 아무것도 못하는 고학
력 바보밖에 탄생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대한민국에선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걸 알기에 그 둘도 그럭저럭 순응하며 살고있다. 실제로 그들이 보는건 저 먼곳이리라.
B의 중얼거림에 T는 눈을 빛내며 다가왔다.
"재밌는일이라고? 이거 봐라. 내가 찾아낸것인데."
하면서 하얀 종이 한장을 건낸다. 그것은 어느 웹사이트의 인쇄물이었다. B는 종이를 받아들고
읽기 시작했다.
"인류멸망기원회 부흥회에서 알려드립니다. 금월중 인류멸망기원회의 추가 회원 가입을 받고
있으니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이게뭐야?"
"계속읽어봐라."
T는 어떠냐! 하는 듯한 표정으로 계속 읽기를 재촉한다.
[인류멸망기원회란 궁극적으로 인류의 멸망을 바라는 단체입니다. 아래 내용은 인류멸망기원회
의 초대 회장 TGM님께서 쓰신 인류멸망을 위하여라는 글에서 조금 발췌한 글로써 읽어보시면
인류멸망기원회가 어떤 단체인지 파악하실수 있으실겁니다.]
B는 여기까지 읽고 황당한 듯이 T를 바라보았다. 인류멸망기원회라니 이 얼마나 사이비 종교같
은 이야기인가? 하지만 다음이 궁금했기 때문에 다시 고개를 내리고 읽기 시작했다.
[인류멸망의 길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혹자는 핵폭탄을 투하해서 전세계의 인류를 죽인다라는
말도 안돼고 바보같은 소리를 하곤한다. 하지만 진정한 인류멸망은 그런것이 아니다. 우리는
인간을 죽이는게 아니다. 우리는 원한다. 신 지성체의 탄생을 그러기 위해 인류를 멸망시킬수
밖에 없는것이다. 그 신지성체는 인간이 될수밖에 없을것이다. 이 지구라는 별에서 지성을 가
진건 인간뿐이니. 하지만 지금의 인간은 인류라는 하등한 집단에 포함되어있다. 전혀 자신을
발전시킬수 없는, 그저그런 자기가 살고있는 별 자체도 망가뜨리는 전 우주 전역에 거쳐 자기
자신 이외에는 아무에게도 도움되지 않는 그런 거대한 집단. 그래서 우리는 인류의 멸망을 결
심했다. 그것을 위한 인류멸망기원회다. 다시끔 말하지만 인류멸망기원회는 인류의 멸망을 바
란다. 일차적으로 인류의 멸망을 위해선 그들간의 거대한 결속력을 끊는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래서 개개인의 꿈을 이용한다. 각자가 자신의 꿈을 위해 활동하게되면. 그렇게 된다면 필시
인류의 미등한, 다른 사람을 짓밟고 자신을 과시한다등의 말도 안돼는 활동은 활동력을 잃고
그것은 그들사이에 경쟁이라는, 그들 자신들이 합리화시킨 단어를 없앨수 있게 될것이다. 경
쟁이라는 거대한 연결고리를 잃어버릴 인류는 그 존재 자체를 존속시킬수 없게될것이다. 인류
멸망기원회는 인간의 꿈을 중시한다. 개개인의 꿈을 이루면, 인류는 멸망한다 -후략- ]
B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얼마나 감동적인 문구인가. 그야말로 자신들이 느끼는 세상에 대
한 불만과 바꿀수 없는 현실을 바꿔줄것 같은 글이다. B는 T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이거 뭐냐 대체. 어떤 녀석이길레 이렇게나......"
"후후, 나도 완전히 감동했다. 난 인류멸망기원회 가입할 생각이다. 이미 홈페이지에 가입의
사를 표명했지. 아침에 늦은 이유이기도 하다."
의기양양하게 T는 말한다. B는 어서 학교가 끝났으면 바라는 듯이 시계를 쳐다본다. 그의 가슴
은 격동하고 있었다. 비록 믿을수는 없는 단체지만. 정말로 그 사상은 자신과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한다. B는 집에가면 꼭 가입신청을 하리라 생각했다.